2023년 쿠팡플레이 축구 해설을 맡은 한준희 해설위원(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이사)의 글을 소개합니다. ‘Best Eleven’ 매거진 2023년 4월호에 실린 내용을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 ‘사커라인’을 통해 축구미디어에 발을 내딛은 내가 2003년 MBC 지상파 축구 해설위원으로 데뷔한지도 어언 20년이 됐다. 나의 축구 해설위원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곳은 역시 KBS다. 2005년 8월부터 리오넬 메시의 대관식이 벌어진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KBS에서 활동했다. 한마디로 KBS는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인도해준 고마운 방송사다. 몇 해 전부터는 SPOTV 출연도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유럽축구 중계이력이 끊이지 않도록 해줬다. 최근 몇 년에 걸쳐 무수히 많은 경기를 중계하도록 기회를 제공한 SPOTV 또한 좋은 추억으로 간직되는 곳이다.
부끄럽지만 이렇게 20년 커리어를 보내는 동안, FIFA 월드컵, UEFA 유로와 챔피언스리그, 올림픽, CONMEBOL 코파 아메리카, AFC 아시안컵과 챔피언스리그, CAF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과 클럽 월드컵,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라 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 1, K리그, WK리그를 모두 중계한 ‘국내 유일’의 축구 해설위원으로 기록됐다. 감히 자평하건대 중계했던 대회의 다양성 면에서 쉽사리 재현되지 않을 라인업이라 할 만하다. 이뿐만 아니라, KBS에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와 실업 대회들 그리고 전국체전에 이르는 대한민국 풀뿌리 축구를 장기간 중계했던 경험 또한 여러모로 소중했다.
그러던 내가 2023년 OTT(Over The Top) 플랫폼으로 진출, 바야흐로 ‘쿠팡플레이’ 전속 축구 해설위원으로 소속을 옮겼다. ‘새로운 도전’이자, 어쩌면 이른바 ‘라스트 댄스’가 될지도 모르는 도전이다.
내가 월드컵이나 EPL 같은 중계를 뒤로 하고 쿠팡플레이로 진출한 것을 의아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쿠팡플레이 입성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OTT 플랫폼은 이제 거스르기 어려운 현재이자 미래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유비쿼터스(Ubiquitous)’를 넘어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에 발맞춰 대중의 미디어 이용 패턴도 이미 변화했다. 넷플릭스로 상징되는 다양한 플랫폼들이 드라마·영화·예능·다큐멘터리 할 것 없이 생활 속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지가 꽤 됐다. 여기에는 스포츠 분야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실제로 세계 굴지의 OTT들이 신규 사용자 확대를 위해 스포츠 콘텐츠를 향한 관심을 차츰 늘려가는 중이다. 스포츠는 기본 속성상 ‘라이브’가 매우 중요한 콘텐츠여서 그래도 지금까지는 자체 라이브 제작능력을 갖춘 기존 방송사들에 유리한 전장이었다. 하지만 스포츠 라이브가 OTT 구독자의 확장에 효과가 크다는 연구 보고가 늘어날수록 스포츠에 대한 OTT 기업들의 투자 또한 더욱 강화될 것이 틀림없다.
둘째, 기본적으로 쿠팡플레이의 각종 계획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 중 일부는 지난해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와 세비야 FC(스페인)가 방한했던 ‘쿠팡플레이 시리즈’에서부터 입증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쿠팡플레이는 기존 방송사들의 한계에서 벗어난 스포츠 중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어떠한 스포츠 콘텐츠이든지간에 기존 방송사들의 중계는 ‘광고를 얼마나 파느냐’, ‘스폰서를 얼마나 많이 잡느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콘텐츠를 구입하는데 투입된 막대한 중계권료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다. 방송사간 시청률 경쟁이 중요한 이유도 사실상 광고를 파는 경쟁과 연동돼 있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쿠팡플레이의 경우는 이러한 부담에서 자유롭다. 쿠팡플레이의 스포츠 중계는 쿠팡 배송 이용 회원들을 위한 양질의 서비스 기능 및 홍보를 통한 회원 확대를 목표로 이뤄지는 까닭이다.
외부의 광고를 유치해야 하는 방송사들과는 정반대로, 쿠팡플레이는 스포츠를 통해 오히려 쿠팡을 광고한다. 다시 말해, 스포츠에 투입되는 자금은 쿠팡의 홍보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쿠팡플레이는 중계방송 전과 사이사이에 광고를 삽입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그 시간을 시청자들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쿠팡플레이와 같은 OTT는 기존 방송사들과는 달리 ‘편성 시간의 자유’를 지닌다. 방송사들에는 스포츠만이 중요한 콘텐츠가 아니다. 뉴스·드라마·예능 등 스포츠보다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콘텐츠가 많다. 물론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특수 상황에서는 스포츠에 할애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스포츠는 크게 대접받는 위치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은 매우 협소한 편성 시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정규방송 관계로 여기서 중계를 마칩니다”라는 멘트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쿠팡플레이에선 이러한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기 전과 후를 활용해 스포츠 팬들의 구미를 돋우는 유익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2023시즌부터 시작한 쿠팡플레이의 K리그 자체 중계 ‘쿠플픽’에서 김경욱(부캐 ‘다나카’)·김아영(‘맑은 눈의 광인’) 씨 같은 연예인들과 더불어 외국 중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프리매치 쇼’를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리포터(김민지 아나운서)를 활용해 기존 방송보다 더 긴 시간의 인터뷰를 들을 수 있다.
쿠팡플레이의 K리그 자체 중계가 지니는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연예인들의 활약이 매우 적정한 선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까닭에 스포츠의 기본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화제성’과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기존 방송사들도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연예인들을 활용했던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사실상 스포츠와 동떨어진 호들갑에 그치는 경우가 잦았다. 중계되는 종목과 대회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한 출연자가 공연히 시간만 잡아먹는 행태를 선보이곤 했다. 반면, 쿠플픽이 시도한 다나카와 김아영의 출연은 스포츠 관점에서도 적절하고 흥미로운 콘셉트로 진행됐다.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의 현대가 더비에서 화제를 낳은 일본 미드필더들을 조명한다든지, 전북과 수원 삼성의 신인선수들을 조명한 것이 그 예시다. 연예인의 캐릭터와 스포츠 관점에서의 관전 포인트를 절묘하게 조합했다. 이들과의 출연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또한, 쿠플픽 K리그 중계에서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국내 중계들보다 많은 첨단 그래픽, 영상, 스탯과 데이터가 총동원된다. 실시간 선수 트래킹을 제공하는 ‘아레나’, 선수들의 전술적 움직임을 분석하는 ‘리베로’가 활용된다. 또 패스 분포도, 기대 득점(Expected Goals), 기대 위협(Expected Threat) 같은 현대 축구의 가장 트렌디한 데이터와 스탯들이 곳곳에 등장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경기 이해를 돕는다.
방송시간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이러한 분석 자료들을 경기 전후와 도중에 적절하게 공급하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쿠팡플레이는 이를 해내고 있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이는 라 리가와 분데스리가의 경기 중 데이터 제공에 필적하거나 외려 능가하는 수준이다. 카메라 워크가 뛰어나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EPL은 오히려 경기 중 데이터 제공 면에서는 그다지 우수하지 않다. 경기 내용을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자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설하는 처지에선 틀림없이 즐거운 일이 된다.
물론 쿠팡플레이를 비롯한 대한민국 스포츠 OTT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하지만 쿠팡플레이는 일단 그 첫 단추를 매우 잘 끼우고 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도전 속에서 쿠팡플레이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발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