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부업 ‘쿠팡 물류센터 알바’에 도전해 봤습니다

쿠팡 로켓배송으로 상품을 주문하면 어떻게 몇 시간 만에 우리 집 대문 앞에 도착하는 걸까요? 어떻게 그렇게나 다양한 상품을 구비할 수 있을까요? 365일 배송하면서 물류센터 직원들은 어떻게 주5일, 52시간 이내 근무를 지킬 수 있을까요?  

현재(2020년 기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회사인 쿠팡의 물류센터 일자리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미디어에서 쿠팡을 취재하는 기자분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부분 중 하나도 바로 물류 현장의 모습 아닐까 합니다.

쿠팡은 전국 30여 개 도시에 물류 시설 100여 개를 갖추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체험담과 근무 팁들도 찾아볼 수 있고, 언론사 기자분들의 체험기 기사들도 적잖게 있죠. 하지만 단편적인 체험기들만으로는 쿠팡의 물류센터 근무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 뉴스룸 팀이 고객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고자 물류센터(Fulfillment Center: FC)에서 직접 일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류센터 자료를 모아 전반적인 업무 흐름도 정리해 봤습니다.

이번 리포트를 위해 경기도 용인1센터(상온)에서 ‘출고 집품’ 업무로, 그리고 평택2센터(신선)에서 ‘허브’ 업무로 근무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쿠팡의 로켓배송과 근무환경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참고로 로켓배송의 마지막 단계인 배송 업무에 대해 궁금한 분은 지난 7월 뉴스룸 ‘플렉스’ 스토리를 보시기바랍니다.)  

물류센터 근무 신청하기 

쿠팡 물류센터는 2종류가 있습니다. 일반 상품을 취급하는 상온센터와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저온 신선센터입니다. 또 각각의 센터는 일반적으로 입고(Inbound: IB) – 출고(Outbound: OB) – 허브(Hub)등 3단계 공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입고는 제조업체에서 보낸 상품들을 차에서 내려 물류창고에 진열하는 과정입니다. 하차, 입고, 진열 등의 세부업무로 나뉩니다. 출고는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진열대에서 집어와서 포장하는 과정입니다. 집품, 리빈, 포장 등의 세부업무로 나뉩니다. 마지막 허브는 포장된 상품을 배송지역별로 묶어서 트럭에 싣고 배송 전진기지인 ‘캠프’로 보내는 과정입니다. 이 3가지 주요 공정 외에도 재고관리(ICQA), 검품, 코비드 와처 등의 다양한 지원 업무가 있습니다.

쿠펀치 앱 QR코드 화면

그럼 구직자는 어떻게 직무를 고를 수 있을까요? 쿠팡 물류센터에 단기직으로 지원하려면 인터넷, SMS 문자, 앱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쿠펀치’ 앱을 통해 신청했습니다. 쿠펀치를 쓰면 전국 각지의 쿠팡 물류시설에서 어느 날에 어떤 일자리들이 나와 있는지를 쉽게 검색해볼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도 간편하고요. 근태 관리와 급여 확인도 할 수 있으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깔아야 하는 앱입니다. (쿠펀치 안드로이드iOS 설치하기) 

쿠팡 단기직의 최대 장점은 내가 원하는 날 내가 원하는 시간에만 짬짬이 근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씩 내 맘대로 근무일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 사정상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 것이 어려운 분들이 많이 활용하시고, 대학생 아르바이트로도 인기가 있죠. 물론 쿠팡은 장기간 근무하는 단기직 사원들에게 상시직 전환을 제안 드리고 있습니다.

1일 차: 용인1센터 집품 업무 

이번에 제가 처음 선택한 근무지는 용인1센터입니다. 그리고 초보자도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알려진 출고 공정의 ‘집품’ 업무를 선택했습니다.  

안전화와 목장갑 

업무일이 됐습니다. 평일이었고 저는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주간 근무조로 일했습니다. 셔틀버스 주차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니 접수대가 보입니다. 쿠펀치를 이용해 출근을 등록하고, 잠시 의자에 앉아 대기했습니다. 코로나 방역 대책에 따라 FC에 오는 모든 사람은 온도 체크와 손 소독을 한 이후에 입장이 가능합니다. 의자들은 2m 이상 떨어져 있으며 마스크는 항상 착용해야 합니다.

곧 인솔자를 따라 안전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안전교육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는데요, 내 몸을 지키는 안전상식뿐 아니라 쿠팡 물류센터의 전체적인 업무 흐름에 대해서도 알려주니 잘 들어 두면 나중에 일이 편해집니다. 그리고 교육시간은 유급 근무시간에 포함됩니다.

무거운 물건들과 장비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물류센터에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일단 어떤 상황이든 절대 뛰어서는 안 됩니다. 설령 누가 서두르라고 하더라도 뛰면 안 됩니다. 무거운 물건은 허리를 굽히지 말고 다릿심을 이용해 들어야 하고요, 또 지게차 같은 장비들도 늘 살펴야 합니다.  

용인1센터에서는 상품을 진열하는 선반마다 숫자 표지판이 붙어있습니다. 앞 통로 쪽으로는 흰색 번호판이, 뒤쪽 통로에는 검은색 번호판이 있습니다. 흰색 번호판이 있는 통로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고 검정 번호판이 있는 통로는 지게차가 다니는 길이라고 표시해 두는 것입니다. 사람과 지게차의 동선을 원천적으로 분리해서 사고 위험을 줄여주는 것인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동선이 겹치는 교차지점이 있으므로 작업자는 늘 주위를 잘 살펴야 합니다.

안전교육이 끝나자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신규 사원들은 소독이 완료된 안전화로 갈아 신은 후 소지품을 개인 락커에 넣고 집에서 가져온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안전화는 무거운 물체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딱딱한 보호 갑피로 싸여 있는 신발입니다. 모양과 착용감은 등산화와 비슷합니다. 저는 발 모양이 평발이라 특수 깔창을 미리 준비해갔는데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또 손가락 부분을 자른 목장갑도 준비해 갔는데 이것은 유용하게 썼습니다. PDA를 조작할 때 편리했습니다.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다 

오전 9시 무렵 드디어 업무에 투입됐습니다. 저를 담당한 여성 매니저는 친절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셨습니다. 작업자들 관리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카트를 밀고 상품을 운반하기도 하셨죠. 관리자가 열심히 일하니 저도 덩달아 열심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매니저님은 저를 생수 라인에 투입했습니다. 초보자 티가 났기 때문일까요? 딱 봐도 쉬운 일을 맡기셨습니다. 2인 1조로 일하는데, 연배가 좀 있으신 베테랑 작업자께서 500mL 생수병 20개짜리 묶음을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리면 저는 그 위에 재빨리 송장(배송주소가 적힌 스티커)을 붙이는 역할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꿀 보직이 있나 싶었죠.

컨베이어벨트 옆에 서서 지나가는 생수 위에 스티커를 하나씩 탁탁 붙였습니다. 몸은 편했죠. 그러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제가 붙인 스티커는 다 삐뚤빼뚤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미술 과목에서는 젬병이었는데 그 똥손이 어디 가나 했네요. 손끝이 무디다 보니 보호지에서 스티커를 빨리 분리하지 못해서 허둥지둥하다가 지나가는 생수 묶음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베테랑 파트너께서 쯧쯧 하며 붙잡아서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 지났을까요? 결국 매니저님이 “사원님…”하고 저를 부르시더니, 다른 일을 맡기셨습니다. 저도 맘이 편해졌습니다. 스티커 붙이기는 제 적성이 아니었던 거죠.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직원에게 사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매니저님이 새롭게 정해준 임무는 생필품 ‘집품’이었습니다. 집품은 물건을 집는다는 뜻이죠. 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처럼 카트를 끌고 넓은 물류센터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선반에서 물건을 하나씩 넣으면 됩니다. 단기직 사원들이 많이 맡는 업무 중 하나입니다.

집품 업무를 하면 손목에 PDA를 찹니다. 이 PDA 화면에 내가 집어야 하는 물건의 위치와 사진과 개수가 뜹니다. 그대로 잘 따라가서 카트에 물건을 넣고 PDA에 확인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그리고 다음 위치로 이동하는 거죠. 캔 음료수 같은 것을 10개, 20개 묶음 단위로 집어야 할 때는 좀 무거울 수 있지만 바퀴 달린 카트를 사용하는 데다가 위아래층을 오갈 땐 카트용 엘리베이터도 따로 있어서 많이 힘들진 않았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나만의 리듬에 맞게 혼자서 일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작업자를 돕는 랜덤 스토우 방식 

쿠팡 물류센터의 AI 시스템은 작업자들의 걸음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물건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동선을 짜줍니다. 특히 손목에 찬 PDA를 보면 이번에 집어야 할 물건뿐 아니라 다음에 집어야 할 물건의 위치까지 미리 알려주는데요, 그러니까 조금만 머리를 쓰면 카트를 효율적으로 움직여가며 걸음 수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다음번 물건과 가까운 방향에 카트를 두고 조금 걸어가서 물건을 집어오면 이동이 더 편할 수 있죠.

또 쿠팡의 데이터 과학 연구자들은 상품 진열 알고리즘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품 업무를 할 때 작업자가 하나의 품목에서 다음 품목으로 이동하는 평균 거리가 과거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작업자가 똑같이 10개를 담는다 하더라도 예전에 비해 총 걸음 수가 확 줄어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혁신이 가능할까요? 쿠팡 물류센터에는 같은 품목이 여러 위치에 분산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똑같은 A사의 식용유 제품과 B사의 배드민턴 라켓이 이쪽 선반에도 있고 저쪽 선반에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이것을 ‘랜덤 스토우(Random Stow)’ 방식이라 부릅니다. 많이 팔리는 제품일수록 여기저기 여러 곳에 반복 진열되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무질서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작업자들의 걸음 수를 최대한 줄여줄 수 있는 자리를 AI가 찾아서 정해준 것이죠.

이때 작업자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내가 집어야 할 것과 같은 품목이 눈에 보였다고 해서 아무 곳에서나 집어서는 안 되고요, 꼭 정해진 칸에서만 집어와야 합니다. 이것만 지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퇴근할 때까지 무난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재미들 

집품 업무에는 부수적인 재미도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물건들을 사는지 구경하는 재미입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먹는 조미김이 어떤 제품인지도 알게 됐고, 아기용 기저귀 못지않게 많이 팔리는 게 성인용 기저귀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시대이지만 여전히 필름 사진용 사진첩을 구매하는 로맨티스트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왜 고양이 모래가 무겁다고 하는지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쿠팡 뉴스룸 팀원으로서 사무실 안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일하다가, 오래간만에 팔다리를 움직여가며 일하다 보니 힘도 들고 땀도 났습니다. 당연하죠. 세상에 처음부터 쉬운 일이 있을까요. 특별한 기술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라 할지라도 그것이 몸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 나름의 노하우와 역량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언뜻 보기에 저보다 몸이 약해 보이는 분들, 특히 나이 많으신 분들과 젊은 여성분들도 경력이 쌓이면서 능숙하게 상품을 운반하시고 포장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직업과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푸짐한 식사와 국민체조 시간(?) 

그럼 식사와 휴식은 어땠을까요? 밥맛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제가 평소 가는 사무실 구내식당보다 훨씬 더 맛있고 푸짐했습니다. 밥과 반찬이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었고요. 그리고 오전 오후 한 번씩 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휴게실에 준비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 작업장에는 얼린 생수가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일할 때 카트에 넣고 다니면서 시원하게 조금씩 녹여 마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선 다 같이 모여서 국민체조를 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10년 전의 저였다면 ‘웬 체조?’라고 시큰둥했겠지만, 이젠 저도 신체 이곳저곳이 삐거덕거리는 나이입니다. 체조와 스트레칭은 부상 위험과 근육 피로를 크게 줄여줍니다. 앞줄에서 가장 열심히 국민체조를 했습니다.

퇴근 시간이 약 20분 남았을 때 저희 집품조가 할 수 있는 일이 다 끝났습니다. 제가 열심히 활약한 덕분일까요? 그렇게 믿고 싶네요. 바로 집에 간다면 좋겠지만 셔틀버스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죠. 신발을 갈아 신고 세수를 한 다음 시원한 휴게실에 앉았습니다. 음료수를 마시고 스마트폰을 보며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코로나 방역 지침 때문에 같이 일한 분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게 살짝 아쉬웠네요.

이날의 소감을 말하자면,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몸은 힘들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종류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일 차: 평택2센터 신선 Hub 업무  

용인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2021년 10월 현재) 쿠팡에서는 일하는 장소를 옮기려면 2주 이상의 간격을 두어야 합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정책입니다. 이제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다른 장소에서 다른 업무에 도전해보려 합니다.

지난번에 갔던 용인1센터는 일반 상품을 다루는 ‘상온’ 센터였습니다. 이번에는 냉장, 냉동식품을 주로 다루는 ‘신선’ 센터를 찾았습니다. 오래간만에 쿠펀치 앱을 켜서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평택2 신선센터의 집품 업무를 신청했습니다. 근무시간은 토요일 밤 5시부터 일요일 새벽 2시까지입니다. 밤 시간 근무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사진: 유진정

평택2센터는 서해안 고속도로 서해대교 인근에 있습니다. 바다가 지척입니다. 서울 동쪽 지역에 있는 저희 집에서부터는 거리가 꽤 멀어서 승용차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주차공간은 넉넉한 편입니다. 출근 시간 30분 전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출근부를 찍으러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담당자께서는 제가 용인센터에서 근무했었더라도 평택센터는 처음이므로 신규 근무자 안전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흐뭇한 미소 절로 나옵니다. 안전은 중요하고, 교육 받는 시간은 근무시간에 포함되니까요.

먼저 탈의실로 향했습니다. 신선센터는 식품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시사철 섭씨 10도 이하로 시원하게 냉방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업자는 방한복을 입습니다. 남자 탈의실에 들어가니 사진처럼 세탁되고 뽀송뽀송하게 건조된 방한복들이 사이즈별로 걸려있었습니다. 저는 최근 몸무게 변화를 고려해 XL과 L 중에 고민하다가 L 사이즈를 골랐는데 다행히 몸에 잘 맞았습니다. 또 신발도 살균기에서 꺼낸 안전화로 갈아 신었죠.

Hub로 가라고요? 

저를 포함해 대여섯 명의 신입 근무자들은 지난번과 같이 안전교육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그리고 담당 매니저로부터 간단한 업무 팁을 공유받았습니다. 그런데 제 계획에 변수가 생겼습니다. 매니저님은 “오늘 집품 업무에는 사람이 충분한데 허브(Hub)에 일손이 부족합니다”라며, 저에게 허브 근무 의사를 물어옵니다.

잠깐 고민하다 새로운 공정을 경험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수락했습니다. 물론 싫으면 거절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허브는 어떤 공정일까요? 

영어사전을 보면 ‘hub’는 중심지, 집결지라는 뜻입니다. 포장된 상품들이 각 캠프로 나가기 전 마지막 준비를 하는 곳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소감문 등을 보면 다른 구역보다 어렵다는 얘기들이 있는데요, 실제로 평택2센터의 경우 임금도 다른 업무보다 조금 높았습니다.

신선 물류센터 프로세스 

이해를 돕기 위해 신선센터의 출고와 허브 업무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상편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집품 작업자가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카트에 담아옵니다.

(2) 담아온 상품을 포장 작업자가 프레시백 혹은 박스에 넣고 밀봉합니다. 이를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면 주소지(시, 군 등)별로 자동 분류되어 아래층 허브로 내려갑니다.  

(3) 허브에서는 미끄럼틀처럼 생긴 배출구 옆에 허브 작업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할 일입니다. 허브 작업자는 ‘빠레트(팰리트, pallet)’라고 불리는 넓은 받침대 위에 프레시백과 박스들을 가지런히 쌓습니다. 그리고 비닐 랩을 둘둘 감아서 단단히 고정시킵니다. 차에 실었을 때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마지막으로 상차 작업자는 지게차나 핸드자키 등을 이용해 래핑이 끝난 팰리트를 대형 트럭 위에 싣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3) 프레시백을 래핑하는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프레시백을 팰리트 위에 가지런히 쌓고 비닐 랩으로 고정시키는 일입니다. 프레시백은 다 아시죠? 쿠팡이 종이박스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친환경 재활용 백입니다. 로켓프레시 신선제품 배송에 쓰이고 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의 다양한 직무들은 겉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실제로는 일의 성격이 꽤나 다른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성격에 잘 맞는 일을 찾으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지난번에 했던 출고 공정의 ‘집품’ 업무는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치 숲속에서 열매를 따오듯이 물건을 찾아오는 일입니다. 반면 허브 공정의 ‘래핑’ 업무는 거의 한 자리에 머물며 하는 일이며 주변 동료들과의 팀워크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호흡을 오래 맞춰온 분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재미 삼아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유형 테스트를 적용해본다면?

‘집품’ 업무는 내향적이면서 자율성을 중시하는 ISTP (만능 재주꾼) 타입의 일 같습니다. 반면 ‘래핑’ 업무는 외향적이면서 의지가 강한 ENTJ – ‘대담한 통솔자’나 ENFJ – ‘사회운동가’ 스타일의 업무 같고요.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참고로 전 이도 저도 아닌 INFP – ‘열정적인 중재자’ 형입니다.

래핑의 기술 

업무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먼저 동탄 시로 가는 라인에 2인 1조로 배정됐습니다. 미끄럼틀처럼 생긴 배출구(슈트, chute) 옆에 대기합니다. 다행히도 이른 저녁 시간에는 프레시백과 상자들이 드문드문 내려오는지라 저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지면서 파트너분께 래핑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라인에 있는 작업자들은 손발을 맞춰야 하니 방역지침에 맞게 거리를 둔 채로 종종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요. 그래서 이곳 근무자들은 다른 곳과는 달리 마스크 위에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페이스 쉴드’까지 착용해 코로나19 확산을 철저히 방지합니다.

일이 한가한 동안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파트너분께 살짝 ‘얼마나 일하셨냐’고 물어보았습니다. 2년 좀 넘으셨다고 합니다. 또 쿠팡에서 여러 직무를 맡아봤는데 허브가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쉽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든, 작업 현장에서 하는 일이든 말이죠.

조금씩 일을 하다 보니, 팰리트 위에 프레시백을 쌓는 데는 여러 가지 요령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선 층층이 지그재그가 되도록 쌓아야 안정감이 생깁니다. 또 프레시백 중에서도 무거운 것을 중앙 쪽에 배치해야 전체적인 모양이 사각형으로 예쁘게 잡힙니다. 그래야만 전체 랩을 감을 때에 무너지지 않고 힘도 덜 듭니다.

또 래핑을 할 때도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냥 둘둘 감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적당히 텐션을 줘서 랩을 팽팽하게 유지해야 했습니다. 너무 약하게 감으면 프레시백들이 흔들리고, 너무 세게 감으면 힘이 들뿐더러 랩이 중간에 끊어질 수 있습니다. 이 일은 몇 주는 해봐야 제대로 손에 익겠구나 싶었습니다. 세상에 단 한 번에 숙달할 수 있는 노동은 없습니다.

한 시간 정도 안전교육을 받느라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업무를 시작했으니 저녁 식사 시간이 금방 찾아왔습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아 보였지만 일 시작하기 전에 간식을 든든하게 먹었던지라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습니다. 이런 리듬으로 일하다가 퇴근한다면 무척 좋겠지만,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허브 업무와 명상의 상관관계 

식사를 마치고 나서 좀 쉬다가, 저는 동탄 라인에서 시흥시 라인으로 재배치되었습니다. 동탄 라인 파트너분과 겨우 말문을 틔웠는데 바로 헤어져야 하나 싶어서 아쉬웠지만, 시흥 라인에서 만난 작업 파트너분도 친절하고 재미있는 분이었습니다.

시흥 파트너분 역시 1년 넘게 일하며 평택 센터의 거의 모든 업무를 경험해 보았다며 그중에서도 허브가 제일 맞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허브 근무의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의외의 답을 들었습니다. “여기(슬라이드)에서 프레시백이 하나 내려오고 그다음 프레시백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명상하는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이런 얘기입니다. 바쁜 시간에는 프레시백이 줄줄이 내려오지만, 한가한 시간에는 5초 후에 내려올지 5분 후에 내려올지 알 수가 없으므로 작업자는 눈과 귀를 적당히 열어두고 대기해야 하는데요. 파트너분은 이때 가만히 몸을 앞으로 기대어 서서 ‘멍 때리기’를 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많은 생각들을 정리한다고 하셨습니다. 구도자처럼요.

날은 토요일이고, 시간은 늦은 밤이었습니다. 남들은 집에서 쉬고 있을 시간입니다.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TV를 보거나 주말여행을 즐길 수도 있었겠죠. 이런 시간에 냉장 물류센터에 나와서 일하고 계신 분들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마침 저 역시 정리하고픈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낯선 남자 둘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서있는 게 민망하기도 했는데, 익숙해지니 저도 같이 멍을 때리듯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며 프레시백을 쌓게 됐습니다. 명상수련 같기도 하고, 일종의 의식이나 의례 같기도 합니다.

피크타임 

자정이 가까워져 옵니다. 이제 배출구로 내려오는 프레시백의 양이 부쩍 늘었습니다. 내일 새벽에 고객의 집 앞까지 로켓프레시 배송을 가야 하는 신선식품들이 줄지어 포장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위층에서 일하는 집품조 작업자들이 한창 바쁘게 돌아다니며 카트를 채우고 있을 것입니다.

업무 종료 2시간을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라인 재배치가 있었습니다. 이번엔 대전 라인입니다. 대전은 대도시인 만큼 하나의 라인으론 부족해서 1, 2, 3라인으로 나뉘어있었고 한 라인에 최대 4명까지 작업자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배웠던 래핑 요령들을 써먹을 타이밍입니다.

쉴 새 없이 슬라이드를 타고 프레시백과 박스가 내려와서 모두 바쁘게 일했습니다. 제가 맡은 두 개의 팰리트 위에 프레시백들이 쭉쭉 쌓였습니다. 마지막 두 시간은 초집중해서 일했는데 그 와중에도 돌아가면서 각자 두 번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물량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어느덧 퇴근 시간인 2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클라이맥스가 대단했습니다. 처음 허브 팀에 왔을 때, “방한복을 계속 입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했었는데요. 동탄 라인의 파트너분은 “밤이 되면 저절로 벗고 싶어질 것”이라 답하셨었습니다. 저는 감기라도 걸릴까 봐 끝까지 방한복을 벗지 않았는데 탈의실에 돌아와 지퍼를 열었더니 몸에서 열기가 후끈 나왔습니다. 내 리듬에 맞게 일했던 집품 업무와는 달리, 허브 업무는 기승전결이 뚜렷했습니다.

옷을 수거함에 넣고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오니 초가을 바람이 시원하게 몸을 식혀줬습니다. 같이 일했던 분들께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인연이 된다면 또 볼 날이 있겠죠.

마치며 

이제 긴 글을 마칠 시간입니다. 초보자라 미숙한 부분도 있었지만 매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으니 받은 돈만큼의 값어치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후 통장에 들어온 임금은 코로나 유행이 끝나면 저희 팀 회식비로 쓰려고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어온 것 같습니다. 오늘도 쿠팡 물류센터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상시직, 단기직 사원분들과 매니저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땀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